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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일심을 가지기 위한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admin | 2010-05-04 오전 5:41:57 | 답변2 | 추천1 | 조회1533

상제께서 “일심의 힘이 크니라. 한 마음만을 가지면 안 되는 일이 없느니라. 일심을 가진 자가 아니면 이 배를 타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신 일심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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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일심을 가지기 위한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에 대한 답변

ggamssi1031 | 2010-07-08 오후 4:36:02 | 추천1

일심을 가지기 위한 노력을 하기에 앞서 일심은 무엇을 의미 할까요? 대순진리회요람에는 신(信)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한 마음을 정(定)한 바엔 이익(利益)과 손해(損害)와 사(邪)와 정(正)과 편벽(偏辟)과 의지(依支)로써 바꾸어 고치고 변(變)하여 옮기며 어긋나 차이(差異)가 생기는 일이 없어야 하며 하나를 둘이라 않고 셋을 셋이라 않고 저것을 이것이라 않고 앞을 뒤라 안하며 만고(萬古)를 통(通)하되 사시(四時)와 주야(晝夜)의 어김이 없는 것과 같이 하고 만겁(萬劫)을 경과하되 강하(江河)와 산악(山岳)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이 하고 기약(期約)이 있어 이르는 것과 같이 하고 한도(限度)가 있어 정(定)한 것과 같이 하여 나아가고 또 나아가며 정성(精誠)하고 또 정성하여 기대(企待)한 바 목적(目的)에 도달(到達)케 하는 것을 신(信)이라 한다.

신(信)은 두 마음을 품지 않고 한 마음으로 “정성하고 또 정성하여 기대한바 목적에 도달케 하는 것”입니다. 상제님의 대순(大巡)하신 진리를 믿고 따르기로 했다면 그 마음에 흔들림이나 변함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즉, 상제님을 따르겠다고 결심했다면 이해타산이나 의심에 의해 마음이 동요되어서는 안 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진리를 지키려는 마음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전경󰡕에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길 “이것이 남조선 뱃길이니라. 혈식 천추 도덕 군자가 배를 몰고 전 명숙(全明淑)이 도사공이 되니라. 그 군자신(君子神)이 천추 혈식하여 만인의 추앙을 받음은 모두 일심에 있나니라. 그러므로 일심을 가진 자가 아니면 이 배를 타지 못하리라”(예시 50절)고 하셨듯이 일심은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인 도통을 이루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필요조건입니다.

 

그럼 일심을 가지기 위한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의 흔들림이나 변심은 확고한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지만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순진리를 바르게 깨닫기 위해 노력해야만 흔들리지 않습니다. 진리를 바르게 깨닫기 위해서는 공부ㆍ기도/수련ㆍ교화ㆍ포덕ㆍ종단의 행사 및 공사 등을 받드는 과정에 일심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수도의 목적인 도통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고 추진하는 일의 성공을 위해서 일심을 가져야 하지만 일심을 간직하는 것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상제님께서도 “진실로 마음을 간직하기란 죽기보다도 어려우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일심을 간직하기가 죽기보다도 어렵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일심을 갖기가 어려운 것이므로 우리는 마음을 닦는 수도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수심이 되고 연성이 되어진 만큼 일심을 간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심을 간직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은 바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수도생활입니다. 일심을 간직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기도수련입니다. 󰡔전경󰡕에 “오는 잠 적게 자고 태을주를 많이 외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공부는 잠안 자는 공부입니다. 오는 잠을 적게 자고 태을주를 많이 읽으면 정혼이 굳게 뭉치게 되므로 태을주의 주력이 쌓이면 예전 보다는 훨씬 일심을 간직하기 위한 마음의 힘을 얻기 쉬울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수련의 본질은 늘 상제님께서 가까이 계시다는 영시의 정신을 모아 단전에 연마하여 자나깨나 잊지 않고 상제님께 정성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상제님을 성경신으로 받드는 일심입니다. 상제님을 모시는 정신을 기도/수련을 할 때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생활 속에서 기거동정좌와에 늘 잊지 않고 생활하는 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우리 도에서 외수들은 도에서 하는 작업이 공부라고 하였습니다. 실로 외수들은 작업을 통하여 정신력을 배양할 수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일에서부터 망치로 못을 하나 박는 일에도 정신이 집중이 되어 심신의 일체를 이루지 못하면 능숙하게 일을 하지 못합니다. 작업을 오래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서툴지만 차츰 일에 익숙해지고 일에 익숙해지는 만큼 마음의 힘도 크게 길러지는 것입니다.

 

일심을 간직하기 위한 노력은 포덕하는 과정을 통해서도 이루어집니다. 포덕에 대하여 도전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훈시하셨습니다.

 

“우리의 수도는 포덕에서 시작됩니다. 포덕을 하기 위해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형태의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겪는 고통(苦痛)과 인내(忍耐)속에서 우리의 마음이 연성(煉性)이 되는 것입니다. 주문만을 많이 읽고 마음만을 닦는다고 소원(所願)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포덕을 통해 나 자신이 연성(煉性) 되고 연질(煉質)이 되어야 운수를 받게 되며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1995. 2. 5)

 

그리고 포덕을 하기위해서는 “먼저 정신통일(精神通一)이 되어 영(靈)이 맑아져야 합니다. 자나 깨나 항상 한 마음 한뜻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도인의 포덕하는 정신입니다.”(1995. 2. 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덕을 하기 위해서는 정신통일이 되어야 하므로 포덕하는 과정 역시 일심을 간직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 되는 것입니다.

 

일심을 간직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교화 역시 중요합니다. 모든 기회를 통하여 교화를 듣고 대순진리에 대한 자각을 높이는 것이 일심을 간직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됩니다. 그리고 수도를 통하여 깨달은 바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위하여 교화하는 것 또한 나의 일심을 제고하는데 기여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는 수도에 힘쓰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교화에 힘쓰는 과정이 곧 일심을 간직하기 위한 노력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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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일심을 가지기 위한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에 대한 답변

sinhee68 | 2010-07-03 오후 2:05:37

일심의 문이 호흡이고 ,수식관이고, 독송이었으니

숨떨어지면 할수없고 식떨어지면 할수없고 입떨어지면 할수없으니

일심이라고 할수도 없지만 영원한 진리라고 할수없지만...

그래서  권하는것은 마음을 중심으로 일심이 되어야 한다.

눈으로 보는것도, 마음이 보는것도, 귀로 듣는것도, 입으로 말하는것도 ,

마음이 하는것이고, 몸이 움직이는것도 ,마음이 하는것이란 생각...

 일심으로 돌려 맡기면 저절로 무아를 실천 하면서,

그런 일심이야 말로 참된 일심이며 무문관을 실천하는 도리이며 자성과 하나가 되는것이도아닐까요???

그래서 일심과 무심은 상대개념이 아니라 하나인 것 같습니다.

무슨일이든지 일심을 가지고 노력하면 안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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